소유가 나를 대신하는 시대. 소유가 나를 지배하느냐? 아니면 존재가 나를 대신하느냐?
변화는 어렵지만 한 걸음이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지
소유는 언제든지 소멸될 수 있다.
소유 지향적 삶은 아무리 가져도 만족할 수 없다. 그 탐욕은 평정에 이르지 못한다.
누군가를 사랑한 다는 것 자체도 소유의 한 모습.
이런 현대의 언어양식은 오늘날의 소외현상의 한 증거이다.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라는 말 대신에 ”나는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주체적 경험은 배제된다. 경험적 자아가 그가 소유한 그것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감정들을 내가 소유한 무엇으로, 즉 문제로 변형시키고 있다. ”문제“란 모든 종류의 어려움에 대한 추상적인 표현이다. 나는 문제를 소유할 수는 없다. 그것은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42
인간은 사물로 변하고, 인간관계는 소유의 특성을 취하게 된 점을 지적한다. 108
옛 사람들은 이미 소유한 물건은 소중히 아끼며 가능한 한 활용했다. 그리고 간직하기 위해서 사들였다.
현대인은 버리기 위해서 사들인다. 보존이 아닌 소비가 모토이다. 108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체이다. 나의 소유물이 나와 나의 실체의 근거가 된다. 116
성행위가 죄악시되는 근거는 성행위 자체에 있기보다는 인간의 의지를 꺾는 데에 있다. 118
성적 자유가 성적 방종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118
금기는 병적인 성적 강박과 도착을 낳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적 강박과 도착이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119
소유는 사물과 관계하며, 사물이란 구체적이며 묘사할 수 있는 것 이다. 존재는 체험과 관계하며, 체험이란 원칙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물(persona), 우리 모두가 쓰고 있는 탈, 우리가 내세우는 자아이다. 인물 자체도 실상 한낱 사물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살아 있는 인간은 죽은 물상이 아니므로 사물처럼 묘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 로 우리는 인간 자체를 결코 묘사할 수 없다. 물론 나에 대해서, 나의 성격, 인생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통찰이 나 자신이나 타인의 심리구조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총체적인 나,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든 개성, 지문처럼 나에게만 뿌리박힌 일회적인 나의 실체는 결코 완전하 포착될 수 없다. 128
이런 경험들은 그 어느 것도 언어로서 완전히 재현될 수 없는 것이다. 언어란 우리의 체험을 채워 넣는 그릇이기는 하지만, 체험을 완전히 담을 수는 없다. 언어는 단 지 체험을 시사해줄 뿐, 체험과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130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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