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은 개인보다도덕적이지 않다.
다수의 군중은 한사람보다 열등하다.
군중은 동물적 본능을 지닌드.
군중은 이미지에 휩씁린다.
군중은 편협성과 맹신이 지배한다.
군중은 사건에 의해 전염된다.
사법부는 군중과 선동에 의해 약탈당했다. 누군가는 무너졌기 때문에, 누군가는 넘어섰기때문에 법치주의는 무너졌다고 한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는 판단에의해서, 누군가는 결과에 의해서 누군가는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서 군중은 그들의 선을 뛰어넘는다.
프랑스 혁명 시작은 시민들의 굶주림과 세금, 폭압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왕가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피의 일주일간 그들은 적과 아군 구분없이 처단했다. 기요틴은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그 둘은 정적 관계였지만 둘 다 기요틴에 의해 죽었다. 과연 정당성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무엇이 됐든지 간에 우리는 결국 이 시대를 이어나가야한다. 그렇기에 환경을 보호해야하며, 선을 지켜야한다. 옳고 그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은 많을 것이다. 내가 지키고 싶은 신념은 토론과 대화로 균형을 맞추어 나갈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폭력을 행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군중은 파괴자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사상은 반쯤 소멸되었더라도 여전히 영향력이 막강하고, 그것을 대체할 사상은 아직 형성 중이다. 따라서 현시대는 과도기, 즉 혼란기다.
인간은 물론 신의 힘으로도 강물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수많은 개인이 우연히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직된 군중의 특성이 생기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예컨대 우연한 계기로 광장에 천여 명이 모였다고 해도 그들에게 뚜렷한 목적이 없다면 심리학적으로 그들은 군중이라고 볼 수 없다. 조직된 군중의 고유한 특성이 생기려면 어떤 자극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
개인이 평생을 일관된 성격으로 살아가는 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환경이 변하지 않아야 성격도 변하지 않는 법이다.
군중은 독립된 개인보다 항상 지적으로 열등하다. 그러나 감정이나 감정이 야기하는 행동으로 볼 때,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군중은 독립된 개인보다 우등할 수도 있고 열등할 수도 있다. 군중이 어떤 암시를 받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군중의 고유한 특성 중에는 충동성과 과민성, 이성적 추론 능력의 부족, 판단력과 비판 정신의 부재, 과장된 감정 등이 있고, 그 밖에도 여성이나 야만인, 어린아이처럼 진화가 덜 된 열등한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여러 특성이 있다.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라도 군중의 눈앞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변형된다. 군중은 이미지를 그리고 머릿속에 이식된 이미지는 애초의 것과 논리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련의 새 형상을 만들어낸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목격한 사건일수록 오히려 가장 의심스러운 사건이다. 수천 명이 동시에 어떤 사건을 지켜보았다는 말 자체가 실제 일어난 사건은 그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다는 뜻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군중의 도덕 수준이 대체로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말해,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본능이 원시시대로부터 내려온 잔재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독자적으로 살면서 그런 본능을 충족하려면 위험이 따른다.
비판 정신이 전혀 없어 자신의 행동에 모순이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사상이 군중의 정신에 뿌리내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사상에서 벗어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사상적으로 군중은 학자나 철학자보다 항상 몇 세대씩 늦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기본적 사상에 오류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더는 믿지 않는 원칙에 따라 통치할 수밖에 없다.
정복자의 권력과 국가의 힘도 군중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상상력을 이용하면 군중을 더욱 쉽게 끌어갈 수 있다. 불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창시, 종교개혁, 프랑스 대혁명, 그리고 요즘 대두되는 사회주의의 위협적인 침투 등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실은 모두 군중의 상상력에 강력한 자극이 더해진 직간접적 결과다.
우리가 어떤 신을 숭배할 때만 종교성을 갖는 건 아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목적 그리고 기준이 된 대의나 인물을 위해 정신적 자원을 모두 투입하면서 개인의 의지를 접고 열정적으로 맹신하는 경우에도 종교성을 갖게 된다.
종교적 감정에는 편협성과 맹신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무신론도 군중이 받아들이면 종교적 감정처럼 여지없이 편협성을 띠고 겉으로 볼 때도 금세 하나의 광적인 종교가 될 것이다.
민족은 과거가 빚어낸 유기체다. 따라서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이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여러 특성이 서서히 축적되어야만 바뀔 수 있다.
생물학적 문제는 물론이고 사회적 문제에서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가 시간이다. 시간은 단 하나의 진정한 창조자인 동시에 절대적 파괴자다. 모래알로 산을 만들고 지질 시대의 하찮은 세포를 존엄한 인간으로까지 진화시킨 것도 시간이다. ‘오랜 시간’이 개입하면 어떤 현상이라도 바꿀 수 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개미가 몽블랑산을 평평하게 깎을 수 있다는 격언도 빈말이 아니다.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마법의 힘을 가졌다면 신자들이 오직 신만 지녔다고 믿는 권한까지 얻게 될 것이다.
정확히 말해, 라틴식이라고 불러도 되는 이런 교육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심리학 지식, 즉 교과서를 암기하면 지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기반을 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때부터 학생들 사이에 교과서를 암기하려는 경쟁이 벌어졌다.
현재 교육은 수업 듣기, 문법이나 요약문 암기하기, 충실히 복습하기, 열심히 모방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방식은 암묵적으로 교사의 무오류성을 인정하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위축시키고 무력하게 만드는 괴상망측한 교육법이다.
단어의 힘은 실로 대단해서 지극히 혐오스러운 대상도 신중히 선택한 새 명칭을 붙이면 군중이 받아들일 만한 게 된다.
민족이 진화하는 주된 요인은 진실이 아니라 오류였다. 오늘날에도 사회주의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것이 여전히 살아 있는 유일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군중의 마음에 환상을 심을 줄 아는 사람은 쉽게 그들의 지배자가 되지만, 군중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들의 제물이 된다.
사람에게 믿음을 부여하면 그의 힘이 열 배는 더 커진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건은 자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 말고는 내세울 것 없는 무명의 신념가에 의해 일어났다.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야만 전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군중의 고유한 특성을 부여하는 사건에 영향을 받으면 먼 거리에서도 전염될 수 있다.
위신은 어떤 개인이나 작품 혹은 사상이 우리 정신에 작용하는 일종의 지배력이다. 위신이라는 지배력이 우리의 비판 능력을 마비시키고 우리 정신을 감동과 존경심으로 채운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그런 감정이 생긴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최면에 걸린 사람이 겪는 황홀감과 같은 종류임이 분명하다. 위신에서 가장 강력한 지배력이 나온다. 위신이 없다면 신도, 왕도, 여성도 결코 군림하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위신을 누려온 신과 인간의 공통점이 있다면 결코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중에게 찬양을 받으려면 항상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일반적 신념에 흔히 내재한 철학적 부조리가 그 신념이 승리하는 데 걸림돌이 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신념에 수수께끼 같은 부조리가 포함되어 있어야만 승리가 가능한 듯 보인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의 신념에도 명백한 약점이 있지만 그런 결함이 군중의 정신을 지배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물려받은 정신 구조에 따라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다. 무척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어떤 환경에 의해 표면상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다른 국적의 개인들이 결집해서 거의 동일한 비율로 구성된 군중을 이룰 때, 이런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평등의 시대에는 모두가 엇비슷하기에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같은 동질성 때문에 사람들은 대중의 판단을 거의 완전히 신뢰하게 된다. 모두가 똑같이 계몽되어 가장 많은 수를 확보한 생각은 진실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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