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

naduyes 2024. 3. 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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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우린 누구나 이름을 남기길 원한다. 음악이든 예술이든. 주인공은 아무도 찾지 못한 곤충을 찾길 원한다. 그리고 학명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길 원한다. 그것은 욕심일수도 있지만 어리석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그의 여정은 무모함 속에 벌인 도전이다.


사막으로 떠난 그는 사막의 유수 속에 마을을 찾게 된다. 그 마을은 사람이 없다. 그리고 마을이 사막의 유수에 갇히지 않기 위해 모래를 퍼날라야한다. 하지만 사람이 없기때문에 그를 가둔다. 그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도망 간 이는 없다. 그도 도망 가려하지만 사막이 그를 막은 건지 그의 생각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한건지 그는 도망 갈 수 없다.

자유를 억압받는 받는 인간은 과연 어떤 의미일지?
우린 너무도 익숙하기에 몰랐던 것들. 하지만 일단 갇히게 되는 순간 알게 된 것들. 하지만 그 갇힘을 벗어나도 다시 갇히게 되는 삶.

‘십 몇 년전, 저 폐허의 시절에는 모두들 한결같이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찾아 광분하였다. 그렇다고 지금,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에 식상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와 다르게 그와 같이있는 여자는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라디오와 거울. 두 개만을 원한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원하는게 많다. 인간은 자유를 찾는다고 하지만 삶은 자유를 하나씩 하나씩 뺏어나가는건 아닐지.
자신이 갇히고 알게되는 관념들은 결국 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되는 과정은 아닐지.

어쩔수 없이 같이 있게된 여자와 아이를 갖게 되고 시간이 흐르자 알게된 사실은 결국 그곳과 그곳은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서로 상처를 핥아 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결국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아닌지.

우리는 편도표를 얻은 인생. 무언가를 깨닫기엔 너무도 빨리 지나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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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길 바란다.
예술로서 음악으로서 주인공은 곤충으로서...학명에 자기 이름을 넣기를 바란다

모래의 발모성은 흔히 말하듯 렌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이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 다. 일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가 20

인간은 타인에게 통용되지 않는 신조라는 것을 갖고 있으니까 68

십 몇 년전, 저 폐허의 시절에는 모두들 한결같이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찾아 광분하였다. 그렇다고 지금,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에 식상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87

—그는 모래 속 집에 갖혔다. 그가 처음은 아니다. 죽은이도 있고, 아직 잡혀있는 이도 있다. 이 모래 속 마을에 살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일꾼이 필요하다. 도망간 사람은 없다.

(이건 슬픈 편도표 블루스.•·•) 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불러. 실제로 편도표를 손에 쥔 사람은 절대로 이런 식으 로 노래하지 않는 법이다. 편도표밖에 갖고 있지 않은 인 종들의 신발 뒷굽은 자갈만 밟아도 금이 갈 만큼 닳아빠져 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그들이 노래하고 싶은 것 은 왕복표 블루스다. 편도표란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 일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맥락 없는 생활을 뜻한다. 그렇 게 상처투성이 편도표를 손에 쥐고서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왕복표를 거머쥘 수 있는 사람에 한한 다. 그렇기에 돌아오는 표를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지 않도 록, 죽어라 주식을 사고 생명보험에 들고 노동조합과 상사 들에게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목욕탕의 하수구나 변기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절망에 차 도움을 구 하는 편도파들의 아비규환을 듣지 않기 위해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이고 열심히 편도표 블루스를 흥얼거리는 것이다. 156

모른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집이다 174

대체 이 아름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 연이 지니는 물리적인 규율과 정직함 때문일까, 아니면 반 대로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해를 거부하려 하는 그 무자비 함 때문일까?174

--여자가 원한건 라디오와 거울

서로 상처를 핥아 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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