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연기 인간 - 알도 팔라체스키

naduyes 2024. 3. 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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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간

연기인간. 그는 항상 말한다.
'나는 매우 가볍습니다.'
그는 다른 말은 하지않았다. 선교도, 포교도, 자신의 의지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한다. 그를 신격화하며 그를 따르면 고해성사한다. 그리고 다시 그를 벌하려 한다. 그의 존재는 매우 가볍다. 그저 대중의 판단으로 그를 몰아세우기 때문에

연기인간은 검은 자궁에서 태어났다. 굴뚝이라는 검은 자궁. 그곳에 33년 갇히고 이유도 없이 내려가 신발을 신게 된다. 만약 신발이 없었다면 그는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신발로 인해 그는 땅에 서 있다. 그리고 땅과 연결되어 존재를 확립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신발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존재하게 된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대중은 그들끼리 선동을 한다. 본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그들의 믿음만이 최고의 가치이며, 최상의 선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은 갈대처럼 이리 저리 흔들리어 바뀌게 된다.
십자군 전쟁. 신은 그 전쟁을 원했을까? 원하지 않았을까? 이 전쟁을 원한 것은 교황. 그는 이교도(이슬람교)의 피를 신이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이 과연 피를 원했을까? 최고의 선을 실행한 그들은 그렇게 전쟁을 일으켰고, 이교도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피로 대지를 젖게했다. 때론 그들은 자기끼리 싸우고 죽이기도 했다.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기에, 완벽한 신이 아니기에 이런 부족함은 당연한듯 보인다. 신을 따르는 것 역시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함에 가깝게 가기위한 것이기때문이다.
하지만 큰 불완전함이 삶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연기 인간은 결국 신발을 벗어 놓은다. 그는 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 무거움을 이기지 못했기때문에 그는 신발을 벗었던 것이 아닐지.
우리의 존재의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우린 그저 땅을 걸어가는 것만이 존재에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닐지. 그저 걸어가다보면 주위의 시기 질투도 느낄수도 있고, 만족감도 느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고 슬퍼질수도 있다. 그저 이런 저런 것을 견디다 보면 우리의 불완전함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닐지.

때론 가벼움이 무거움을 이길때도 있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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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사람 비슷한 건 신발밖에 없어요.

—자신을 사람이라고 말하는 연기 인간

기억은 있어요. 장면은 없고. 매 순간을 다 기억합니다. 하지만 보는 건 불가능해요. 내 준변은 온통 검었어요.

그저 존재하기 시작했고, 점점 내 존재를 개달았고, 들었고, 이해했고, 느꼈습니다.

불은 끊임없이 타올랐고 뜨거운 연기가 올라와 내 생명을 키워주었지요. 난 이제 사람이었습습니다.

—그는 왜 사람이라고 하는가? 자기가 사람인지 어떻게 아는가?

나는 전쟁에 대해, 사랑에 대해, 철학에 대해…배웠습니다.

—가볍지만 모든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연기 인간

그분이 편찬하시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그분이 하십니다
--앞 뒤 안 맞는. 어차피 존재가 안 뒤 안 맞음

—여자들이 하는 사랑이야기. 남자들에 비해서 많이 이야기함

나에게 사랑이 인생의 본질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죽음의 문제였어요.

페나: 고통, 레테: 그물, 라마;창
눈, 손, 미소

그분이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거야. 느낄수도, 잘 수도, 먹을 수도, 축복받은 인간이 하는 어떤 일도ㅠ할 수 없다는 거야

--끼어 맞춰서 찬양하는...파티 의자 부족한거 당신때문에 왐벽해 진다. 안 앉기 때문에 완벽해 진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무한대로 가볍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의 용서
다른 사람이 저지른 죄의 용서
혼자 죄짓는 사람을 위한 용서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나쁜 순간에 죽습니까, 아니면 죽음이 인생의 가장 나쁜 순간입니까?”
“죽음은 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강렬하게 열망하는 순간입니다. 죽음은 삶의 문일 뿐이며, 죽음의 문턱에 접근할 때 사람들은 그 열기로 그을립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누가 깨어날 수 있다면, 그러면 삶이 뭐라고 우리에게 말해줄까요? 어쩌면 죽음이 뭐냐고 우리한테 질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이 뭔지 모르세요? 하느님은 무無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완전체입니다. 사람들은 무에 말을 부여하고 싶어 했죠. 결과적으로 무엇이 되게끔 한 거지요. 당신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사람이고 어떤 무엇입니다. 연기는 무가 아니에요. 연기는 연기지요.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신 하느님은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일 뿐이지요. 당신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일종의 하느님일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사건들은 페렐라의 의견없이 다른 사람의 판단과 이야기로 전개되어진다. 그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볍기때문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다들 좋다, 훌륭하다. 멋지다 외치는데요! 순식간에 그를 왕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나의 의견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나를 만들어 나간다

—해석하는 자들의 어리석음

—십자군전쟁도 생각나고, 마녀사냥도 생각난다

—왜 연기인간에게는 물어보지 않는가?

저 아래에서 나는 대단히 훌륭한 식견을 쌓게 되겠지. 그러나 더 나은 식견, 즉 나의 가벼움은 마침내 잃어버리고 말겠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희생자를 원한다는 사실잉에요.

사람들이 나를 증오할 이유가 있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져서 쓰러지는 걸 의미한다면, 그들이 옳아.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한 거야.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페렐라는 늘 그 모습 그대로다.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가볍다는 말. 마지막에도 가볍다는 말. 같은 말이지만 대중의 판단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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