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바다 가득히 팽팽했으나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이 있고 함대는 없다.'
'다시 내 앞에 펼쳐진 바다는 감당할 수 없는 넓이로 아득했고 나는 한 척의 배도 없었다.'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나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나의 무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물러설 자리 없는 자의 편안함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사지에서는 본래 살길이 없었다.'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온 바다를 송장이 뒤덮어도, 그 많은 죽음들이 개별적인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며 무너져갔 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엇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물 위에는 없었고 바다는 언제나 새로운 바다였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죽음이 남겨놓은 것들은 바다 속에 파묻혀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다. 죽음이 남겨 놓은 피는 산을 붉게 만들고, 바다를 물들이게 하고, 바위를 빨갛게 물들이지만 그 붉음은 다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으며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해 보지만 결국 아무것도 없음만이 그것을 증명할 뿐이다.
과연 아무것도 진짜 어디에도 남겨지지 않는 건지.
아무런 흔적도 없는 새로움만이 깨달음이면서 가야할 길일지도 모르겠다.
칼에는 의지가 담겨있고, 그 울음을 멈추길 기대하지만 손 댈수 없는 곳에 의지가 있으며, 그곳에 가닿으려 하지만 칼은 나아갈수 없다.
의지는 어디에서 죽을지. 죽을 자리를 결정할 수 있는 것만이 의지인듯 싶다.
칼로 베어질 수 없는 것들만 남겨놓고 먼저 죽는 이의 한은 이내 다른 의지를 반영한다.
물러설 수 없는 곳에 자리한 이의 고민은 무거움을 담고 있지만 쉽게 그 무거움을 떨쳐낼 수 없다. 모든 이의 고통이 담겨 자신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은 없었을 것이다.
칼은 아직도 노래하고 있다는 것. 그 울림이 바다에서 공기에서 전해지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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