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에티우스. 그가 유배 당했을 때 불공평함, 선과 악 등 그의 사색이 담겨진 책.
그는 철학의 여신과 대화 함으로서 그의 철학을 표현했다.
플라톤에서 내려온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 주의.
스토아학파
아리스토텔레스 등 다양한 사상이 그의 철학에 영향을 준듯하다.
또한 이러한 사상들이 기독교에도 영향을 주었고, 선과 악의 대립. 악인들이 처해지는 처벌 등 현대 기독교 사상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선언한 이후 다른 종교를 억압하고, 기독교 이외의 다른 문화를 제거하려했다. 그래서 올림픽도 사라졌고. 기독교의 사상 자체도 과거의 다양한 문화에 영향을 받고 발전했듯이 과거의 모든 것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선? 악? 과연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논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선으로 향하고 악은 선으로 회귀한다지만 선과 악 그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보에티우스가 유배 당한 것이 악인가? 그것은 보에티우스의 입장이고
보에티우스를 유배 시킨 사람은 그것이 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과연 순간의 행복을 외면할 수 있을까?
영원한 행복은 결국 죽음. 그 이후의 행복이 과연 완벽한 행복으로 이어질지. 사는 것도 중요하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다. 이후는 이후의 일이 아닐까?
순간의 행복은 사는 동안 최선의 과제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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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이는 때
바다는 자신의 성난 뿔로
무수히 많은 모래들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힌 채 빛나고 있네.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들여
재물을 한없이 쌓아두고도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르고
불평과 불만과 탄식을 그치지 않는구나.
신이 사람들의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어
후한 손길로 황금을 퍼주고,
허영심으로 가득한 자들을
존귀와 명예로 채워 주어도,
그들은 이미 얻은 것은 돌아보지도 않고
또 다른 것에 눈길을 주는도다.
탐욕은 이미 얻은 것은 삼켜 버리고
또다시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이어서,
많은 것을 얻으면 얻을수록
탐욕의 목마른 갈증은 더욱 심해져 가니,
그 어떤 것으로 이 끝없는 욕망에
재갈을 물릴 수 있겠으며,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늘 부족하다 느끼고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안달하는 자를
어찌 부자라 부를 수 있으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아, 도대체 무엇이 너를 비탄과 애곡 속으로 내던져 버린 것이냐? 너는 네게 익숙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낯선 것을 보아 왔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이 너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돌변하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녀는 늘 그런 식으로 행동해 왔고, 그것은 그녀의 본성 자체이다. 따라서 그녀가 너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은 자신이 늘 해 왔던 대로 한 것일 뿐이고, 따라서 자신의 본성을 충실히 따른 것일 뿐이다. 그녀가 네게 미소를 지으며 온갖 거짓 행운으로 너를 유혹하여 혹하게 만들고 있던 그때에도, 이미 그녀는 자신의 본성을 따라 언제든지 너에 대한 태도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지 너는 이 눈먼 여신이 자신의 두 얼굴을 모두 네게 내보였을 때에야 비로소 그녀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일 뿐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자신의 한 쪽 얼굴만을 보이며 다른 쪽 얼굴을 감추고 있지만, 네게는 자신의 모든 면모를 남김없이 드러낸 것만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운명의 여신은 제멋대로 왔다가 제멋대로 가버리는 존재인데도, 너는 여전히 그런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냐. 그녀는 절대로 언제까지나 머물지 않고 단지 잠시 동안만 머물 뿐이며, 떠날 때에는 네게 불행을 남겨 주리라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데도, 잠시 동안의 행운이 네게는 여전히 소중한 것이냐. 붙잡아 두고 싶어도 붙잡아 둘 수 없고 떠날 때에는 불행만을 남기는 행운이라면, 그런 덧없는 행운은 단지 다가올 불행의 전조 외에 무엇이겠는가.
세월은 지면을 꽃과 열매로 뒤덮었다가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지면을 얼려 버리기도 하며, 바다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다가도 폭풍우를 일으켜 거친 노도로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왜 인간은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내가 내게 합법적으로 주어진 길을 따라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아 서서 한 곳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기를 강요하는 것인가. 하지만 내가 가진 힘은 끊임없이 나의 얼굴을 바꾸며 사람들을 희롱하는 데 있다. 나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쉬지 않고 돌려서,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이 되게 하고, 가장 높은 곳이 가장 낮은 곳이 되게 하는 것을 기뻐하고, 거기에 나의 힘이 있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너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 주마. 하지만 내가 원할 때에 너를 가장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고 해도, 너는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불평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그것이 내가 네게 내거는 조건이다.
자신의 삶이 너무나 완벽하게 행복해서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추호의 불만도 없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겠느냐. 인간에게 주어진 행복이라는 것은 완벽할 수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어서 언제나 근심과 염려가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권력에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런 권력을 진정한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선한 자들과 악인들은 둘 다 똑같이 최고선을 자신들의 목적으로 삼고서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지만, 선한 자들은 선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본성적인 기능인 미덕을 사용해서 최고선을 추구하는 자들인 반면에, 악인들은 미덕이라는 본성적인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런저런 욕망들을 통해 최고선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 말에 대해 너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있느냐
왜 악인들은 미덕을 버리고 악을 추구하는 것일까. 선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가장 힘없는 자들이라는 말이 맞다. 무지로 인한 맹목보다 더 약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욕망이 그들을 사로잡아서 악으로 휘몰아가는 것인가. 이 경우에도 그들이 가장 힘없는 자들이라는 말이 맞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자제력이 결핍되어 있는 자들이고, 악덕과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선이 무엇인지를 뻔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악을 추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단지 힘이 있기를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를 그치는 것이다. 만물의 공통적인 목적은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기 위해서 선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선을 버리고 악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덕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고 있는 너희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풍족한 삶이라는 운명에 져서 방종과 쾌락으로 치닫지 않고, 도리어 그런 운명을 이기고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더냐? 너희는 불운으로 인해 짓눌리거나 행운으로 인해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온갖 운명과 정신적으로 치열한 싸움을 치르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온 힘을 다해 중용을 지켜라.
표지라는 것은 그것이 가리키는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니라, 단지 그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가리켜 보여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인식하고 아는 것에 있어서 인식 대상의 능력이 아니라 인식 주체의 능력이 사용된다는 것을 너는 알겠느냐.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합당하다. 왜냐하면, 모든 판단은 판단하는 주체의 행위인 까닭에, 판단 주체가 타자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그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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