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매니악 - 벵하민 리바투트

naduyes 2024. 7. 2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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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2021 부커상 최종 후보작이자 전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화제를 모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의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가 또 하나의 문제작을 들고 찾아왔다. 전작이 현대 과학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온 여러 과학자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신작 『매니악』은 ①파울 에렌페스트(물리학자) ②존 폰 노이만(수학자ㆍ물리학자ㆍ컴퓨터과학자) ③이세돌(바둑 기사)의 내면과 행동, 그로 인해 격변하는 세계에 초점을 맞춘 소설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실에 근거한 허구로 쓰여진 논픽션소설이다. 이야기는 에렌페스트의 비이성(불확정성ㆍ양자역학)의 발견으로 시작되어 → 폰 노이만에 의해 매니악 컴퓨터가 발명되고 → 그것이 더욱 발전되어 지금의 AI(알파고)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내며 전개된다. 특히 3부 대미를 장식하는 이세돌 파트는 바둑과 AI라는 과거와 현재가, 동양과 서양이, 인간과 기계가 충돌-대결하는 격전장이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히 펼쳐진다. 매니악[MANIAC] 1. 미치광이, -광 2.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의 줄임말로, 존 폰 노이만이 만든 컴퓨터의 이름 3. 세계사에 격변을 일으킨 천재들의 광기 어린 정신세계로 당신을 안내하는 이 소설의 제목
저자
벵하민 라바투트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4.01.26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너무 너무 아쉬웠던 책. 그만큼 푹 빠져서 읽은 책.
인류의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고? 도착점을 어디로 잡고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인류에겐 지성이 있다. 그 지성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답은 없다. 오직 진보만 있을 뿐이다. 양자역학을 시작으로 핵폭탄, 매니악이라는 창조물로 수소폭탄 발명. 피조물창조로 이어진 AI의 등장.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무너뜨린 알파고의 승리.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건지 전혀 알수가 없다. 하지만 우린 나아가고 있다. 도착점이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고 있다.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며 말이다.
알파고를 만든 제작자들은 그 동안 인간이 했던 모든 것을 삭제했다. 이젠 어디로 갈지 알파고가 어디로 뛸지 모른다. 이젠 바둑뿐만이 아니라 체스 등 다양한 곳에서 독자적으로 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다. 오직 진보만 있을뿐이다. 이것의 이름은 알파고 제로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0.

존 폰 노이만의 악성 종양으로 죽어가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최고의 지성으로 못할 것이 없는 모습만을 보여줬던 그.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종교에 매달리고,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은 그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서 그가 일급비밀을 노출할까 옆에서 죽음을 부추기는 모습은 그의 과거 성공들의 의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핵의 무서움 앞에 누군가는 공포감을 누군가는 전율을. 이를 이용하여 더 무서운 것들을 발명해가는 인류.

완전한 파괴는 평화의 부정이다.

이성과 비이성. 과연 어떤 모습이 이성일지

근 몇 년 물리학계에서 일어난 발전들을 이해하기가 점점 더 힘에 부칩니다. 노력해봤지만 무기력해지기만 했고 갈피를 잡지 못해 결국은 절망하여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삶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31

모든 진리의 추구자들이야말로 구원받지 못한 영혼의 공동체, 말하자면 일종의 파난처이자 삶을 영위할 능력을 망친 이성의 파괴력으로 인해 우리가 상실한 집을 짓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38

원인과 결과, 죄와 속죄, 잘못과 처벌이 물고 물리며 이어지는 사실은 천국에까지 다다라 전능하신 주이자 거룩한 분이며 신성한 존재인 신께서 죽음의 천사를 벌한 뒤 신의 왕국을 세우는 것으로 완성된다. 40

정반대를 증명해 냈다. 체계가 완전하여 그걸로 모든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 다면 그 체계는 모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고 그러므로 비일 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불완전한 체계는 당연히 만족스럽지 않지만, 비일관적인 체계는 그보다 훨씬 나빴다. 그것으로는 원 하는 게 뭐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1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칼로 물베듯 선명히 구분할 수 없다. 156

원자폭탄 창조로 물리학자들은 죄악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앎은 도무지 잃을 수 없는 것이다 200-201

완전한 파괴는 곧 평화의 부정이다 204

작디작고 보잘것없어 그 기원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 를 통해서 새롭고 찬란한 시야가 열리기도 한다. 존재의 고차원 적 질서는 바로 그런 것을 통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이런 일이 어쩌면 사방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의식의 경계에 잠재해 있거나 우 리를 에워싼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며, 저마다 격렬하게 피어나 반짝일 가능성을 품은 채로 이 세상의 바닥을 뜯어내 그 아래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지도. 224

아니면 수백만 년의 여정을 뒤로하고 방향을 틀어 돌아 와 오래전 작별한 부모인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며 무거운 질문 에 답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우리 종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바 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왜? 왜 우리를 창조해놓고 버렸나요?
왜 우리를 어둠 속으로 보내버렸나요? 이런 비현실적인 미래는 일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낮지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 는 우리의 피조물에 책임이 있는가? 모든 인간 행위를 결속하 는 것처럼 보이는 사슬이 우리를 피조물과도 묶어놓았는가? 228

기계가 진정한 지능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 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런 기계는 오 류를 저지르고 원래 설정된 프로그래밍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하며, 무작위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튜링 은 바로 이런 무작위성이 지능을 가진 기계의 관건이라고 믿었 다. 229

결국 기술은 인간의 배설물일 뿐 대단한 '무언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거든.
거미줄이 거미의 일부이듯 기술도 우리의 일부일 뿐이니까. 하 지만 기술은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불가피한 특이점으로,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가 더는 지속되지 못할 티핑 포인트로 나 아가고 있는 듯해. 이제 진보는 이해를 초월할 만큼 빠르고 복 잘해질 걸세. 기술력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진 성과이고, 과학은 자주해 중립적이어서 어떤 목적으로든 쓰일 수 있는 통제 수단
을 제공할뿐 모든 사안에 무관심하지. 어떤 특정한 발평품의
삐뚤어진 극리력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야. 위험은 원래부
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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